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빨강머리 앤님의 글을 옮겨왔습니다.

‘화양연화(花樣年華)’
; 가장 아름다운 한때, 혹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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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휴가를 나온 아이를 대전의 자운대로 귀영시키고자 서울역에 서 있었습니다. 이등병의 4박 5일간의 첫 휴가는 아이의 말대로라면 삼초 만에 지나갔다고 합니다. 아이와 기차를 기다리며 가장 좋았던 때를 회상해 보았습니다. 아이는 수능을 치루며, 그때가 지나면, 어려운 시절은 다시없을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아이. 때문에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은 아이 실력으로는 지방의 전문대도 못 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이야기를 듣고 고민이 되었지만, 저는 아이가 공부는 못해도 심성이 착하고 장손으로 자라 어른들께 예의가 바르니 그 점이라도 많이 칭찬해주시라고 선생님께 특별히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때 제 생각은 남자 아이니 고등학교과정에서 평생을 가는 좋은 벗들만 만날 수 있다면 대학은 어느 때건 본인이 뜻할 때 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지요. 공부 못하는 것도 괴로울텐데 입시 위주의 학교생활이 즐겁지 않을까봐 걱정도 되었던 것입니다. 덕분에 아이는 공부를 못하면서도 선생님들께 오며가며 예의 바르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었나 봅니다. 아이는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제게 자주 전했고 아이는 점점 더 어른들께 인사를 깍듯이 하게 되었습니다.
3학년이 되고도 아이는 공부에 관심이 없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이는 수능 6개월 전부터 하루 19시간 이상의 강행군을 하며 후에 제 말대로라면 미친 듯이 공부를 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저는 오히려 아이가 쓰러질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수능을 끝내고 원서를 쓰러 학교에 갔더니 2학년, 3학년, 담임선생님이 다 오셔서 다른 아이들 서울대 간 것보다 더 큰 경사라며 축하를 해 주셨습니다.
아이는 임상심리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살려 원하는 대학은 아니지만 지방의 원하는 과에 전학년 장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4학기를 마치는 2년 동안을 아이는 영화와 음악에 빠져 사느라 겨우 유급을 면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따놓은 장학금도 다 날아가 버렸지요. 같은 해에 함께 입학해 학부생이 된 엄마는 장학생인데 젊디젊은 아이가 학비를 생으로 내게 된 것이 마땅치 않아 한마디 하려면, 아이는  망설임 없이 제 의견을 말했습니다.
 이런 시절도 군대 가면 끝인데 빨리 철들기 싫다. 이십대에 추억을 남겨줘야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황당한 주장이었지만  한편 일리 있는 말이었기에 철없는 엄마는 짐짓 모른척 설득당해 주었습니다.
저와 닮은꼴로 감성적이고, 여린 아이는 몸과 마음을 귀속시켜야 하는 군대제도에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강요는 하지 못하면서 아이가 군대를 언제 갈 것인가 하는 불안한 심정으로 지켜보게 되었지요.  아이가 한량 생활을 하는 동안 겉으로는 대범한 엄마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마냥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2학기를 마치자마자 한량 생활을 청산, 군대에 지원을 했고, 어느덧 4 개월이 흘러 100일 첫 휴가를 나온 것입니다.
시간이 다 되어 아이가 개찰구로 나가며 제게 말했습니다. “화려한 휴가, 짧은 꿈을 꾸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그렇게 가기 싫어하던 군대였는데 지난 오개월간의 시간이 익숙하게 해 주었네요. 엄마 걱정 마세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쉬운 빛이 역력한 아이에게 해주어야 할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저는 웃으며 어색한 충성 경례를 붙였습니다. 아이는 저를 따듯하게 포옹해 주고 씩씩한 척 돌아서서 기차를 타러 갔습니다.
 
집에 돌아와 휑한 마음을 달래며 이글을 쓰고 있는데 수신자 부담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엄마, F학점 받으며 신나게 놀았던 시절이 아니라 발등에 불 떨어져 피나게 공부하던 그 6개월이 정말로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못 견딜 것 같은 시간이 그리워질 줄 어떻게 알겠어요. 그러니 지금을 잘 즐겨보려구요. 부대에 잘 도착했습니다. 휴가 잘 보냈어요. 사랑해요. 엄마. ”
 
이제 막 역에 도착한 사람, 이제 막 어디론가 출발하려는 사람들로 역사는 붐비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해야 할 일, 그리운 것, 따듯한 것에 이끌려 어디론가 향하는 발걸음이겠지요. 어디에 있거나 『花樣年華』 화양연화는 지나간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재, 팔팔 뛰고 있는 날것의 지금, 당신이 숨쉬고 있는 그곳이 아닐런지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를 뜻한다는 화양 연화, 당신은 느끼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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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볼때마다, 이제는 남얘기 같지가 않다.
나도 아들이 둘이다 보니.. 아직은 나이가 어리지만, 군대도 생각하게 된다.
딸가진 집은 시집 보낼거 생각한다는데…
또한, 자녀를 키우면서 나한테도 생길수 있는 저런 시간들을 어떻게 지혜롭게 보내야할까 고민하게 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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