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빨간 우산 – from 낮은울타리

by Tech 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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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울타리라고 아시나요?
제가 한때 근무하기도 했던 회사입니다. 기독교 문화 출판 회사인데 선교단체 못지 않게 많은 사역들을 합니다.
대표적인 월간지가 ‘낮은울타리’입니다. 회사이름과 같죠…
기독교계의 ‘좋은생각’ 같은 잡지라고나 할까…
제가 고등학교때 처음 나와서 수십년간 봤는데, 요즘은 낮은울타리가 좀 예전같지가 않네요.
사업하기도 어려운 시대이고…
거기에 실렸던 글중에 하나입니다.
한번 읽어보시고 부부의 소줌함을 느껴보세요^^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 “아내의 빨간 우산” 

우리 집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 모두가 놀라며 묻는 말이 있습니다. 

“아니, 거실 벽 중앙에 왜 우산을 걸어놓으신 거예요?”

그럼 우리 부부는 그저 ‘하하, 글쎄요….’ 하며 쑥스럽게 웃을 뿐입니다. 너무 오래되어 빨간색이 분홍색이 되도록 바래버린 우산.

그 우산은 우리 집 가보처럼 거실 벽 중앙에 걸린 채 우리 가정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아내와 나는 서로가 미워질 때 늘 그 우산을 바라보며 다시금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요. 그러니까 꼭 십육 년 전, 가을이었습니다. 

결혼한 지 일 년 칠 개월이 된 아내와 나는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현실에 처한 여러 가지 문제 앞에서 갈등하다가 서로를 너무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임신 칠 개월인 아내와 함께 가정법원을 찾았지요. 변호사 사무실을 처음 찾았을 때 변호사가 기가 막히다는 듯 묻더군요.

“참…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정말 두 분 이혼하러 온 부부 맞습니까?”

“네에. 확실합니다. 저희는 남이 되기로 확실히 약속했습니다.”

내 대답에도 변호사는 계속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 부부를 쳐다보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이혼하러 간 우리가 상호간에 대단히 협조적이고 존중하는 자세였기 때문입니다. 막내로만 곱게 자라 여섯 남매의 장남에게 시집오자마자 시동생 셋을 데리고 살며 고생하는 아내에게 더 이상 끝이 보이지 않는 짐을 지어줄 수 없었던 나. 그리고 자신이 자꾸 나쁜 아내, 못된 며느리, 고약한 새언니로 변해가는 것을 두려워하던 아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내와 그런 아내를 보듬어주지 못하는 나 사이에는 작은 다툼이 계속되었고, 그러는 사이 우리는 사랑하던 부부였지만 서로를 증오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늘 느끼게 되었지요. 결국 우리는 삼류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변호사 앞에 앉은 겁니다. 

모든 서류를 완성하고 서소문 가정법원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길. ‘이제는 정말 남남이 되었구나.’ 생각하니 서글퍼지더군요. 그런데 하늘이 그 서글픈 감정에 위안을 주고 싶었는지 갑자기 폭우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그 비는 서울지역 홍수를 불러와 안양천이 범람했을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집을 나설 땐 함께 나선지라 컴컴해진 하늘을 보고 한 개의 우산만 들고 나왔는데 헤어질 때는 각자의 집으로 나뉜다는 것을 미처 생각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보, 당신이 쓰고 얼른 가, 산모가 비 맞으면 큰일 나.”

“아녜요. 당신이 쓰고 가세요. 난 버스정류장도 가까운데요. 뭐.”

“또, 또 고집 부린다. 자꾸 그럴래?”

우리는 가정법원 계단 앞에서 또 한번 말다툼을 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내가 아내를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습니다. 아내의 빨간 우산은 어린이 우산 마냥 작았습니다. 더구나 비가 너무 많이 퍼붓는지라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아야 했습니다. 한 우산 속에 아내와 나란히 걷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지요. 그런데 아내의 어깨가 너무도 가냘프고 작았습니다. 마치 나 때문에 아내의 어깨가 오그라든 양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류장에 다 왔을 때, 아내는 또 한번 고집을 부렸습니다. 자신은 이제 버스를 타면 되니, 내게 우산을 갖고 가라는 겁니다. 비는 그칠 기미도 보이지 않는데 말이지요. 

결국 또 한번의 부부싸움. 그런 우리 앞에서 버스는 기다리다 못해 떠나버렸습니다. 작은 우산 아래서 우리의 틈이 벌어질수록 아내는 내리치는 비를 맞았고, 추웠는지 벌벌 떨기 시작했습니다. 

“에이, 비도 안 그치고 배도 고픈데 우리 집에 가서 라면이라도 먹고 헤어지자.”

그런 상황에서 ‘라면’ 생각을 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참 철없는 남편이었지요. 하지만 아내는 순순히 따라와 줬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했던 집으로 말이지요.

라면을 먹던 아내와 나는 처음 만나 라면을 함께 먹던 이야기부터 시작해 어느새 라면 양념으로 서로의 콧물, 눈물을 들이붓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마음이 거짓말처럼 열렸을 때, 아내는 갑자기 비에 젖은 우산을 수건으로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못을 박아 걸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 손을 잡더군요.

“여보, 우리 서로가 미워질 때, 이 우산을 보며 기억해요. 아주 작은 우산이지만 꼭 붙은 채 함께 쓸 때는 적은 비를 맞았잖아요. 이제 바보처럼 떨어져서 더 큰 비 맞지 말아요.”

그렇게 삼개월 후 큰 아들이 태어났고 얼마 전에는 늦둥이 쌍둥이 남매까지 낳았습니다. 이제는 낡아버린 작은 우산. 하지만 우리 부부가 함께 사는 마지막 날까지 마음 속 비바람을 막아줄 거란 걸 확신합니다. 

낮은울타리 Since 1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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